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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50분. 역에 구미 버스 170번이 들어왔다.
아니, 정확히는 구미역에서 대기하다가 50분이 되어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해야겠다.
버스 시동을 걸고 한동안 중립 놓고 풀악셀을 밟던데. 차 길들이기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소음공해도 그렇고 차에 좋을지는 난 모르겠다.
뭐, 버스에 대해선 나보다 기사님이 잘 알겠지만.
170번은 구미역을 출발해 선산터미널로 향한다. 전 차와 달리 승객이 그리 없는 노선인지, 속도가 매우 빨랐다. 30분만에 선산터미널에 도착해, 놓친 원래 계획 대신 구미의 다른 노선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선산터미널에 도착해보니 버스 노선 번호가 전체적으로 바뀌어있었다. 정확히는 구미 버스 노선번호가 개편되었다는 사실을 여기 와서 안 건데, 선산터미널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외곽 노선에 한해서만 개편이 이루어진 듯 했다.
처음엔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많이 당황했지만, 터미널 벽에 개편 전 노선번호, 이후 노선번호가 써져있었고 전체적으로 노선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어 안심하고 탈 수 있었다.
개편 전 노선번호는 기억이 안 나서 잘 모르겠고, 170번 다음에 내가 탄 버스는 72-1번이었다.
아무리 개편 전 노선번호가 붙어있다고 해도 하필 갑자기 버스 대개편이 이뤄지면 외지인으로써는 솔직히 당황스럽다. 물론 내가 모른 것이고 아마 구미시는 사전에 다 공지를 했겠지만, 외지인인 나는 올바른 노선을 탄다 한들 마음 한 켠에 '잘못 탄 거면 어떡하지?'스러운 불안감이 스밀 수밖에 없다.
내가 탄 72-1번이 점점 사람 한 명 없는 산골짜기로 들어가고 있으니, 더욱더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산골짜기 깊숙이 들어가다가 기사님이 갑자기 다 왔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여기서 내리면 택시를 부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당시 어렸던 내가 카카오 택시를 쓸 수 있었을 지는 나도 확실치 않다.
그래서 내가 패닉에 빠져있었을 때, 마치 구원투수가 오듯 건너편에서 상주여객의 버스가 왔다.
상주여객의 버스. 무번호 노선이다. 나는 농어촌엔 무번호 버스도 많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던 것 같다.
72-1번 기사님과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시내버스 여행객들을 위해 기사님들끼리 연락하여 상주터미널행 버스를 운영한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도 이런 시스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덕분에 종점인 산촌마을입구를 빠져나와 상주터미널로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2시 38분, 상주터미널에 도착했다.
다음에 탄 버스도 상주여객의 무번호 버스인데, 상주터미널에서 화령정류소를 거쳐 용화까지 가는 노선이다. 장장 60km에 달하는, 초장거리 노선으로 불린다고 한다.
여기서도 또 타자마자 화령정류소에 도착할 때까지 기절해버렸다.
이럴 거면 도보를 안 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엄마가 없었다면 잠 때문에 실패했을 여행이니까.
3시 38분에 잠을 깨보니 나도 모르게 화령정류소로 워프해있었다.
3시 40분까지 화령에 도착하면 보은군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다른 루트로 갈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몰라요 ㅠ), 실제로 보은행 버스가 대기 중이라서 엄마랑 이야기를 했으나 안전하게 가자는 엄마의 의견을 따라 최종적으로 기각하게 되었다.
결국 보은행 버스는 먼저 출발했고, 우리는 곧이어 용화로 향했다.
용화는 가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4시 18분 쯤, 용화정류소라 주장하는 장소에 내렸다.
그러나 우리는, 또 72-1번 때처럼 산촌마을입구에 내린 듯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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