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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

부산 - 서울 시내버스 일주, 그 기행의 과정 - 4.

본 기행문은 소설의 형식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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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8 - [여행/국내여행] - 부산 - 서울 시내버스 여행 팁

2019/05/19 - [여행/국내여행] - 부산 - 서울 시내버스 일주, 그 기행의 과정 - 1.

2019/05/20 - [여행/국내여행] - 부산 - 서울 시내버스 일주, 그 기행의 과정 - 2.

2019/05/23 - [여행/국내여행] - 부산 - 서울 시내버스 일주, 그 기행의 과정 - 3.

 


 

10km. 사실상 전주 시내를 남북으로 대략 1.5번 정도 횡단할 수 있는 길이니, 별 거 아니네. 라고 생각해야지

 

일명 언양 도보. 이 길로 가면 발바닥이 남아나지 않는다.

 

시 외곽이라 그런지, 하늘은 별이 쏟아질 듯 무수히 빛을 발산하고 있다. 아름다운 밤하늘의 위로를 받으며 언덕을 넘고, 70년대 같은 마을길도 지나고, 국도 한켠에서 조용히 걸었다. 가방엔 자전거 후미등도 달고, 손엔 손전등도 들고.

 

그렇게 가다 편의점 들러 꿀물도 들이키고 걷길 두 시간 반. 마침내 언양터미널. 새벽 230분에 버스를 내린 후 새벽 5시에 도착하였다.

 

계속 걸었더니 찢어질 것 같은 발바닥은 살살 달래며, 이른 아침을 먹고자 근처 돼지국밥 집에 들어간다. 540분에 첫차를 타면 이제 아침 먹을 시간이 없으니 이르더라도 지금 먹는 것이다.

 

시뻘겋게 팔팔 끓여서 나오는 전주의 국밥과 다르게, 이곳은 맹하고 미지근한 사골국물에 다데기만 따로 내오는 형식이다.

 

너무 심심해서 내가 싫어하는 맛. 사골도 안 좋아하는데 이게 맞을리가 없지.

 

국밥은 원래 이렇게 양념을 따로 넣도록 나온다는 걸 여기서 처음 알게 됐는데, 내 취향엔 도저히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치만 이걸 먹어야 살 수 있잖은가. 먹고 싶은 마음은 별로 안 들었지만 참고 먹었다.

 

울산광역시 시내버스 308번.

 

꾸역꾸역 먹고 정류장에서 기다리길 10, 대망의 첫차, 울산광역시 시내버스 308번이 도착하였다.

 

계속 걸어서 피곤했는지 올라타자마자 잠에 들었다. 비몽사몽하며 어이구야 하고 깨보니 종점. 심야에 오래도록 무리하게 걸은 대가다. 이렇게 기절하듯 잠드는 게 좋은 건 아닌데오늘 환승을 정말 많이 하게 될 터인데, 이런 식의 실책은 정말 치명적일 수 있어 문제다.

 

내리자. 안녕히 계세요.” 만약 엄마가 날 이렇게 에스코트해주지 않았더라면 기사님이 나를 종점에서야 깨웠을 정도였다. 큰일이다 큰일이야.

 

아무튼 눈을 비비며 나가서 정류장 이름을 보니 봉계. 어느 시골마을 종점이고 우리 앞엔 다른 버스 한 대가 대기 중이었다.

 

경주 버스 500번.

 

내가 타야 할 다음 버스. 경주시 시내버스 500. 이걸 타고 이제 울산에서 경주 시내로 가는 거다.

시내로 가면 도중에 300번으로 환승. 아까처럼 잠만 잤다간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그래서 잠을 자지 않고 버티려 했건만. 후폭풍이 예상보다 매우 컸나보다. 나는 분명히 눈을 부릅뜨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의식이 끊기더니 한적한 시골길에서 건물들이 즐비한 시내로 워프해있었으니 말이다. 아이고

 

오전 75. 버스가 신한은행 사거리라고 말한 후에야 어머니의 도움으로 정신을 차려 나갈 수 있었다. 어머니, 같이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경주의 모든 시내버스가 몰려드는 정거장, 신한은행 사거리」. 내린지 3분이 채 되지 않아 다음 버스가 달려온다. 경주 버스 300. 경주 북쪽 외곽, 아화터미널로 빠지는 다음 노선이었다.

 

경주 버스 300번.

 

너무 순조로운데. 원래 버스는 건너편에서 아슬아슬하게 놓치는 걸 바라봐야 제 맛인데. 변수가 엄청나게 많을 시내버스 여행이, 별일 없이 참 잘 풀리니 오히려 불안하다.

 

버스가 시내를 벗어나 아화터미널로 가는 동안에도 이 불안감을 도통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머지않아 잠자긴 했는데. 기사님이 깨워주실 때까지.

 

이게 얼마나 배부른 생각이었을까. 이때까지만 해도 뭣모르고 참 여유로웠던 것 같았다.